부레가 고장난 심해어처럼, 나는 멍한 상태로 침대에 걸터앉는다. 


-박민규, <지구영웅전설>, 7페이지



안녕하세요, 슈퍼맨.

바나나맨입니다. 감짝 놀라셨죠? 에 플루리부스 우눔, 바로 저랍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아니, 건강하신지요. 아니 물론, 당신이 아프거나 못 지냈을 리 만무하지만, 아무튼 저는 그렇게 묻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도무지 어떤 안부도 지구 최강의 사나이와는 어울리지 않아, 이미 서두에서부터 진땀을 흘리는 중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안부란 것은, 약하고 평범한 인간들끼리 주고받는 일종의 위로가 아닐까, 란 생각이, 당신께 보내는 편지를 시작하면서 강하게 드는 새벽입니다. 


-박민규, <지구영웅전설>, 5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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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구가 도는 게 느껴질 땐 말이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뭐가? 그러니까... 정말 우주에서... 행성 위에서 살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런 곳에서... 왜 고작 이따위로 사는 걸까, 라고요 


-박민규, <카스테라>. 86페이지 



푸르른 솔처럼 곧고 강인했던 남자의 눈에서, 그러나 그 순간 눈물 같은 것이 반짝였다. 나는 숨을 죽였다. 그러나 눈물은 흘러내리지 않았고 다시 형의 눈 속으로 스며들었다. 표면장력이 강한, 투사의 눈물이었다.


-박민규, <카스테라>, 196페이지



인간이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무력하기 때문이었다. 


-박민규, <카스테라>, 207페이지



1센티 두께의 베니어로 나뉜 칸칸마다 빼곡히 남자나 여자들이 들어차 있다. 그 속에서 다들 소리를 죽여가며 방귀를 뀌고, 잠을 자고, 생각을 하고, 자위를 한다. 살아간다. 생각할수록 그것은 하나의 장관이다. 뭔가 통해 있고, 비릿하고, 술렁이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것은 세포막이 아닐까? 


-박민규, <카스테라>, 29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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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장정일

2012. 4. 29. 00:22



꿈과

꿈 

사이에 현실.


현실과

현실 사이에 꿈.


꿈과

현실 

사이에 

시. 

-장정일, <주목을 받다>, 김영사



꿈을 꾸다 사이사이 현실에 닭살 돋고

현실과 현실 사이 일광 아래 꿈을 꾸고

이런 상념들 속에 

시를 끼고 시간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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