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의 시점과 합의에 대한 양성간의 의견 불일치는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근원이 되기도 한다. 121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4주간 데이트를 하면서 매일 일기를 쓰게 한 결과, 서로가 바라는 성적 친밀감 수준을 둘러싸고 한 번 이상 의견 불일치를 경험한 비율이 47%였다(Byer & Lewis, 1988). 이러한 불일치는 항상 예측가능한 성차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217명의 여성 중 53%가 "자신들이 바라는 성적 친밀감 수준을 남자친구가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반면에 72명의 남성 중 45%가 "자신들이 바라는 성적 친밀감 수준을 여자친구가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Paton & Mannison, 1995, p.447).

여성은 그런 의도가 없는데 남성은 여성이 자신에게 성적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추론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며, 이러한 사실이 갈등의 중요한 심리적 근원이 된다. ...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여성의 단순한 호의나 웃음을 성적 관심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분명히 남성은 상대 여성이 자신에게 성적 흥미가 있다고 추론하며, 때로는 이렇게 추론된 바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성적 기회를 얻고자 한다. 아마도 진화의 역상 동안 이로 인해 성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면, 남성은 낮은 역치 수준에서 여성의 성적 관심을 추론하도록 진화되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실제 성적 관심이나 의도를 확실하게 추론하기는 사실 불가능하다. 때문에 남성이 여성의 성적 관심을 잘못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보다 성적 의도를 지각하는 역치 수준이 낮다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남성적 메커니즘은 교묘한 착취나 이용의 대상이 되기 쉽다. 여성들은 때로 성을 전략으로 이용한다. 200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이 이성의 특별한 대우를 받기 위해 실제로는 성관계를 맺을 의도가 없으면서도 미소를 짓고 시시덕거리며 유혹하는 경우가 많았다(Buss, 2003). 


-데이비드 버스, <마음의 기원>, 나노미디어, 455-458 페이지 



남성은 빨리 육체 관계를 가지고 싶어하고 여성은 그것을 미루려고 한다. 남성은 여성의 행동이 성적인 관심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남성이 여성보다 성적 의도를 지각하는 역치를 낮게 가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성은 성적 의도 판단에 있어 제 2종 오류보다 제 1종 오류가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남성일 때는 관계를 가지는 여성이 많으면 많을수록 (유전자의 입장에서) 좋다. 그러므로 여성이 성적 의도가 있는데 눈치채지 못했을 때(제 1종 오류) 남성이 받는 손해가 성적 의도가 없는데 있다고 판단했을 때(제 2종 오류)의 손해보다 훨씬 크다. 성적 의도를 과잉 추정하여 설사 퇴짜를 많이 맞더라도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성적인 의도가 없었다면 어차피 성관계를 가질 수 없으니 손해가 작다. (손해가 전혀 없지 않은 이유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과도한 접근이 관계를 멀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반면에 많은 남성과 관계를 맺는 건 전혀 유리하지 않다. 단 한 명의 남성이라도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자신에게 헌신해 줄 수 있는 남성이 낫다. 까다롭게 골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은 이 남성이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헌신해 줄 수 있는지를 테스트 해야하고 단기적 성관계를 맺고 도망가 버릴 남성을 가려내야 한다. 그러므로 여성이 성적 의도를 진짜로 드러낼 때는 남성에 대한 믿음이 섰을 때이다. (여성 또한 단기적 짝짓기 전략을 추구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


이 최적 전략의 차이가 남녀간에 갈등을 유발한다. 


여기서는 '성적 의도'라고 하였지만 반드시 그것이 '성관계를 가질 의도'일 필요는 없다. 아직 성관계까지 상상하지 않더라도 어떤 여자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것도 포함된다. 내가 좋아서 그런가보다라는 착각을 하는 남성들을 이용해 매력적인 여성들은 어장관리를 하기도 한다. 인용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일부러 그런 착각을 이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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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위해 선택된 소수의 매력적인 여성들은 수천 명 중에서 뽑힌 소수다. 많은 경우에, 선발된 여성들은 또한 수천 장의 사진을 찍는다. 예를 들어, 월간지인 플레이보이는 대략 6,000장의 사진을 찍는 것으로 이름이 나있다. 이러한 수천 장의 사진 중에서, 출판을 위한 소수의 사진만이 선별된다. 그러므로 남성들이 보는 것은 최고로 매력적인 에어브러시로 처리된 사진에서 최고로 매력적인 배경으로 최고로 매력적인 포즈를 취한 최고로 매력적인 여성들이다. 이렇나 사진들은 20, 30명 무리에서 살았던 남성들이 100,000년 전에 목격했을 것과 비교해보아라. 그러한 환경에서 남성들이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 여성을 열 명이라도 보았을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매력적인 여성의 상대적인 풍요 속에서 남성들은 배우자를 바꾸는 것을 합리적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 남성은 자신의 현재 짝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줄여나갈 것이다. 

-<마음의 기원>, 데이비드 버스, 233 페이지 



위에서 인용한 문단은 현대사회의 우리가 왜 행복할 수 없는지를 보여준다.    던바 넘버(수렵 채집 사회에서 인간 집단의 무리가 이루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숫자, 대략 150)에서 오랫동안 진화해왔던 인간에게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스포트라이트는 욕망의 수준을 높인다. 몇 천 만 명 중에 선발된 사람과 몇 백 명 중에 선발된 사람의 수준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구석기 시대의 인류가 지금 미디어에서 나오는 연예인급의 사람을 보려면 몇만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즉 100번 다시 태어나야 겨우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쉽게 클릭 몇 번으로 수많은 자극들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다. 결국 미디어에서 눈을 떼 현실을 돌아보면 좌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가혹한 다이어트와 성형에 대한 압박을 준다.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로 대표되는 능력 있고 연봉 높은 사람들을 미디어가 많이 비추면서 거기에 대한 박탈감 또한 상당하다. 미디어라는 것은 어쨌든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을 만한 내용들을 비추기 때문에 거기에 속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현대사회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행복을 재기 위한 준거기준을 미디어에서 상당부분 세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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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경우에는 자기존중감이 단기적 짝짓기와 유의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자기존중감이 높은 여성들에 비해 낮은 여성들은 청소년기 이후로 더 많은 성관계 파트너를 갖는 경향이 있었으며, 지난해에 더 많은 수의 성관계 파트너가 있었고 더 많은 횟수의 하룻밤 정사가 있었으며, 단기적 성적 관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고 단기적 짝짓기 전략을 추구하는 것으로(SOI 점수에서) 나타났다. 

-<마음의 기원> 2판, 데이비드 버스, 나노미디어, 275페이지 

자기 존중감이 낮다면 남성이 자신을 오래도록 사랑해줄 것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낮을 것이다. 그러므로 단기적 짝짓기 전략을 추구하게 만들 수 있다. 자기 존중감이 높고 자신이 남성들에게 인기를 얻고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장기적 짝짓기를 추구하는 것이 좋다. 여자는 가능한 한 자신에게 헌신할 수 있는 장기적인 짝을 원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 낮은 자존감이 단기적 짝짓기와 관련있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어 보인다. 

남성의 경우에는 애초에 단기적 짝짓기를 추구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존감과 크게 상관없다. 오히려 낮은 자존감을 가졌다면 단기로 자기와 성관계를 맺어줄 여자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처음부터 헌신적인 전략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대한 특별한 말은 없는 것을 보니 남성에게는 낮은 자존감이 성관계 전략에 영향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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