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시


시계바늘처럼 정확한 

어머니의 칼도마 소리에잠깬 아침 여섯시

게으른 이불 속 뭉기적, 시와 놀았다


어제는 오늘을 얹고

오늘에 내일을 

또 내일에 내일을......

그렇게 켜켜이 김장배추 속 채우듯 알뜰하게 세월을 싸서

누구에게 갖다 바치려는 걸까, 어머니는


아아, 어머니는 당신 평생을 저리

썰다가만 가시려는구나

쓱쓱 싹둑 저미고 다져

시간을 엮지 못하고

피곤을 꿰매지 못하고

눈물과 한숨을 그냥 촘촘

썰다 고이 가시려는구나


시계바늘보다 촘촘한

칼도마 소리에 찔린 아침

나는 시 하나를 엮었다

부끄러운 한올을. 


-최영미, <꿈의 페달을 밟고>, 창작과비평사




"어머니는 당신 평생을 저리 썰다가만 가시려는구나"

어머니, 싹둑 썰어서 자식들에게만 나눠주셨던 어머니. 

이제 당신의 시간을 엮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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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자존심



지금은 아니야.

나는 내가 완전히 잊혀진 뒤에 죽겠어.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자들에게 

무덤에서 일어나 일일이 대꾸하고 싶지 않으니까. 


-최영미, <돼지들에게>, 실천문학사



시인 최영미처럼 치열한 삶을 살지도 그런 경험이 있지도 않아

그래서 내가 죽고나서도 이러쿵 저러쿵 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있어 언제나 따르는 자만큼의 안티가 있기 마련이다. 치열하게 살았으니까, 무언가와 싸웠으니까. 적이 되버린 사람들 혹은 적도 친구도 아니지만 자신을 험담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대꾸하기 싫음을 잊혀지고 나서 죽겠다고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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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알겠니?'

2012. 6. 7. 01:14


가슴을 쥐어뜯다가도

금방 살아갈 구멍을 찾고

꿈을 꾸면서도 포기하는 나.

날마다 조금씩 자기를 파괴하면서 

결코 완전히 파괴할 용기는 없었지 


-최영미, '알겠니?' 중에서, <돼지들에게>, 실천문학사 



거창한 꿈을 꾸는 것도 현실의 벽과 벽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만 가능할 뿐이고

그 꿈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도 보도블럭 틈으로 자라나는 잡풀처럼 불가능해보이는데

어느 하나를 완전히 결단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

과거든 미래든 어느 하나는 절단해야 하는 일이라 

결국은 현재의 현실에 머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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