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나오는 조언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고 우선적으로 새겨야 할 것들만 적어본다. 

1. "한 문장이 길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그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대중의 귀를 사로잡기가 힘들다." 질질 끄는 가사 보다는 짧게 끊어서 써야 한 덩어리로 가사가 들어온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지만 가사는 특히 구절이 있기에 더 신경써서 끊어야 한다.

2. '(주) 뮤직큐브'와  '(주)네가네트워크' 등의 전문 프로듀싱 회사에서는 다량의 작곡가와 작사가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필요할 때마다 의뢰를 통해 곡이나 가사를 의뢰하여 앨범을 완성한다.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잡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신인 작사가에게 기회를 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런데 이 책이 쓰여진 2007년 이후 아직 저 회사들이 운영되고 있는지, 아니면 더 많은 프로듀싱 회사들이 생겨난 지는 모르겠다. 

3. "멜로디가 하고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이 프레이즈에서는 멜로디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이 멜로디의 흐름은 의문문인지 감탄문인지, 저 프레이즈가 가진 억양은 여운이 있는 것인지 말을 맺고 있는 것인지". 멜로디의 흐름이 의문문인지 감탄문인지 아니면 평서문인지 구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며 그 느낌을 터득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능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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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3


땅 속에서 눌린 돼지 머릿고기처럼 포개진 너와 나, 우리는 원래 이곳의 주인이었던 돌과 흙만큼 단단히 서로를 붙잡을 수 있을까? 어머니인 대지, 마그마의 뜨거운 자궁에서 잉태된 돌보다 더 뜨거운 피로 지금 사랑하려는 사람들아 ㅡ 우리 위에도 땅이 있고 우리 밑에도 땅이 있다 우리 위에서 우리를 밟고 우리 밑을 우리가 밟는다 흑흑흑 우리는 너희를 밟았다 돌돌돌 우리는 너희를 깨부쉈다 죽였다 다시 살렸다 반듯하게 새옷을 입혀 계단을 깔고 벽을 세운 우리는, 이 땅의 주인들을 짓밟고 그들의 시체로 신도시를 건설한 우리는, 그들만큼 철저히 서로를 망가뜨릴 수 있을까 그들만큼 완벽한 하나가 될 수 잇을까 그들, 돌과 흙보다 깊이 서로를 간직할 수 있을까?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비




뭉개뜨려 만든 시멘트는 단단하게 뭉쳐 벽을 만들고 천정을 만든다. 지하철은 땅 밑을 지난다. 항상 발 빝에 있다. 땅을 밟아 다져지듯 지하철을 버티고 있는 그것들도 발로 밟아 단단해진 것으로 연상한다. 그리고 그 연상은 지하철을 건설하며, 혹은 다른 국가 기반 시설들을 건설하며 목숨을 잃거나 혹은 서서히 목숨을 내주었던 노동자들에게로 옮겨간다. 우리가 밟고 있는 그 땅에는 그들도 있다. 우리는 그들마저 깨뜨리고 다져서 지하철을 만들었다. 그들의 희생 위를 걷고 있다. 그 죄책감에 시인은 묻는다. 우리는 우리마저 완전히 무너뜨려 그들과 함께 뭉게질 수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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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까페의 노래


언젠가 한번 와본 듯하다
언젠가 한번 마신 듯하다
이 카페 이자리 이 불빛 아래
가만있자 저 눈웃음치는 마담
살짝 보조개도 낯익구나

어느 놈하고였더라
시대를 핑계로 어둠을 구실로
객쩍은 욕망에 꽃을 달아줬던 건 
아프지 않고도 아픈 척
가렵지 않고도 가려운 척
밤 새워 날 세워 핥고 할퀴던
아직 피가 뜨겁던 때인가

있는 과거 없는 과거 들쑤시어
있는 놈 없는 년 모다 모아
도마 위에 씹고 또 씹었었지

호호탕탕 훌훌쩝쩝
마시고 두드리고 불러제꼈지
그러다 한두 번 눈빛이 엉켰겠지
어쩌면...
부끄럽다 두렵다 이 카페 이 자리는
내 간음의 목격자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비



어둠의 시대를 살아도 사랑은 흐른다. 눈빛은 뜨거워진다. 
"시대를 핑계로 어둠을 구실로".
민주화의 피가 끓어올랐던 그때, 반드시 그것만으로 뜨거워졌던 건 아니었다. 모든 것이 헤퍼지고, 모든 것이 전략이 되고, 모든 것이 인증과 과시의 목적이 된 지금은 오히려 어느 것에도 끓어오를 수 없다. 
부끄러운 간음의 목격자에게 다시 찾아왔다. 아직도 뜨거운 재로 기억에 온기를 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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