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3


땅 속에서 눌린 돼지 머릿고기처럼 포개진 너와 나, 우리는 원래 이곳의 주인이었던 돌과 흙만큼 단단히 서로를 붙잡을 수 있을까? 어머니인 대지, 마그마의 뜨거운 자궁에서 잉태된 돌보다 더 뜨거운 피로 지금 사랑하려는 사람들아 ㅡ 우리 위에도 땅이 있고 우리 밑에도 땅이 있다 우리 위에서 우리를 밟고 우리 밑을 우리가 밟는다 흑흑흑 우리는 너희를 밟았다 돌돌돌 우리는 너희를 깨부쉈다 죽였다 다시 살렸다 반듯하게 새옷을 입혀 계단을 깔고 벽을 세운 우리는, 이 땅의 주인들을 짓밟고 그들의 시체로 신도시를 건설한 우리는, 그들만큼 철저히 서로를 망가뜨릴 수 있을까 그들만큼 완벽한 하나가 될 수 잇을까 그들, 돌과 흙보다 깊이 서로를 간직할 수 있을까?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비




뭉개뜨려 만든 시멘트는 단단하게 뭉쳐 벽을 만들고 천정을 만든다. 지하철은 땅 밑을 지난다. 항상 발 빝에 있다. 땅을 밟아 다져지듯 지하철을 버티고 있는 그것들도 발로 밟아 단단해진 것으로 연상한다. 그리고 그 연상은 지하철을 건설하며, 혹은 다른 국가 기반 시설들을 건설하며 목숨을 잃거나 혹은 서서히 목숨을 내주었던 노동자들에게로 옮겨간다. 우리가 밟고 있는 그 땅에는 그들도 있다. 우리는 그들마저 깨뜨리고 다져서 지하철을 만들었다. 그들의 희생 위를 걷고 있다. 그 죄책감에 시인은 묻는다. 우리는 우리마저 완전히 무너뜨려 그들과 함께 뭉게질 수 있느냐고. 
Posted by 소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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