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맞다. 지네 다리같은 고통이 있고 뚜렷한 자국을 파는 고통이 있다. 누가 내 고통의 핸들을 잡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고통의 요동침에 멀미가 날 것 같다. 고통도 관성이 있다면 아무렇지 않을까?
고통의 경계를 표시하려는 것처럼
셀 수 없는 지네 다리처럼 바지런한 고통이 있고, 탱크의 캐터필러처럼 뚜렷한 자국을 파는 고통이 있다. 고통 속에는 누군가 타고 앉아 핸들을 잡고 있다. 그가 힘껏 페달을 밟으며 너털웃음 터뜨리면, 웃음소리에 맞춰 새로 해 박은 당신의 어금니가 흔들리고, 멀쩡한 다리는 석유 시추공처럼 내려 박힌다, 예정된 속도와 정확한 각도로. 이윽고 고통이 멎으면, 당신은 또 한쪽 다리를 들고 뜨거운 오줌을 찔길 것이다. 그 와중에도 오직 당신의 것인, 고통의 경계를 표시하려는 것처럼.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열림원
별 모양의 열대 과일
(전략)
말레이시아에서 나는 별 모양의 열대 과일을 보았다. 피망 썰듯이 써는 족족 별이 되는 과일, 꼭다리 끝까지 썰어도 별이 나오는 과일, 하늘 - 화채 그릇 속에 떠도는 초록 별 - 열매, 그러나 하늘의 별은 별 모양이 아니고, 해삼처럼 미끄러워 잘 썰리지도 않는다.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열림원
과일의 단면은 그 과일의 진짜 속내일까. 껍질에 싸여 감춰두었던 진짜 속내를 잘라 들여다보면 거긴인 별도 있고 달도 있고 해도 있다. 별을 닮은 것은 별빛을 받고 달을 닮은 것은 달빛을 닮았겠지. 그리고 그 모두는 해를 받아 달아졌겠지. 진짜 별은 별 모양이 아니고 둥그런 과일모양일텐데.
삶과 죽음이 불편한 자여
이 세상에서 사람은 상록수 방식으로 사는가, 활엽수 방식으로 사는가. 학생들한테 물으면 열의 아홉은 활엽수 방식이라 한다. 그럴까. 가을 되면 다리털 빠지고, 머리카락 다 빠져 대머리 되고, 가을 되면 서울 사람들 다 죽어 가는가. 봄 오면 다리털 자라나고, 번쩍이는 대머리에 머리털 무성하고, 서울 사람들 강변 억새풀처럼 되살아나는가. 이 착각이 어디서 오는지 몰라도, 인도에서 불교가 발달한 것은 잎 지고 잎이 나는 북방에서라고 한다. 삶과 죽음이 불편한 자여, 동네 뒷산 소나무 밑에 가 보아라.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열림원
겨울이면 떨어져나가는 활엽수 같은 친구보다 때론 찌르기도 하지만 언제나 붙어 있는 침엽수 같은 친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