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생긴 저녁


보고 싶어도 참는 것
손 내밀고 싶어도
그저 손으로 손가락들을 만지작이고 있는 것
그런 게 바위도 되고
바위 밑의 꽃도 되고 난도 되고 하는 걸까?
아니면 웅덩이가 되어서
지나는 구름 같은 걸 둘둘 말아
가슴에 넣어두는 걸까?

빠져나갈 자리 마땅찮은 구름떼 바쁜
새로 생긴 저녁


-장석남,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보고 싶어도 참아야 생명이 자라나고
만지고 싶은 걸 참아야 아프지 않는.
지나는 구름 둘둘 말아 어디에다 풀어내려고
누구 맛보게 해주려고.
참고 참아 저 구름이 자라나고
비가 뜯겨나가도 아프지 않게 하련다
아니 그 아픔을 그냥 지켜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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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손이 다섯


봄은 손이 여럿
그중 하나를 붙잡고 나서면
강물은 온다
강물에 봄 산은 꽃까지도 안고 떠밀려 온다
봄 강물 위에 뜬 것
열넷 계집애 신학기의 웃음소리나
그 웃음 기슭의 오랑캐꽃
돌멩이에 발부리 채여 발등에 돋는 환한 꽃들도 모두
내 것이야 내 것일 뿐이야
내 것 아닌 것 하나도 없을 대가 되어
여럿의 봄 손길 중 하나를 붙잡고서 나는
속엣것 다 내꽃으며 섰는 꽃나무이고
또 꽃나무이고


-장석남,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봄을 잡으려 손을 내밀었지만 봄은 말없이 손을 흔들고 떠났다.
어떤 것도 내 것 같지 않았다.
Posted by 소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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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목을 입력해 주세요
죄목을 입적해 주세요
죄옥을 입적해 주세요
죄옥을 입덕해 주세요
죄옥을 입덧해 주세요
감옥을 닫아 주세요
달달한 옥같은 그곳을 닫아 주세요
다다 주세요
모두 다 주세요
그것을 모두에게 가만히 주세요
곁에 두세요
곁가지를 쳐서 가지를 엮어서
그 가지를 땋아서
말라서 빻아서 죽끓여서
잔뜩 발라서 찍어 드세요
다 말라 드세요
드시고 마르세요
마르세기에 놀려 주세요
말이 말을 넘고 타고 목을 타고 넘어 주세요

정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나를 울어 주세요
울어서 복제해 주세요
복제한 것들을 다 몰려 주세요
이것들을 다 어디다 쓰는 거에요
다 배설해 버리세요
머리 속에서 싸우는 밈들을 다 복제해 주세요
멈춰버린 시간은 다 멎어버리지만
그치만 치아만 동그랗게 그린
그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그처럼
그의 웃음 뒤에 숨은
검은 치아처럼
검고 흰 치아처럼
오골계의 뼈처럼
상처에 붙은 검은 딱지처럼
딱지보다 더한 깊은 상처의 골이
그 골짜기에 내려앉은 오래된 마른 피처럼
그건 그렇게 굳어버린 구덩서 사라져버린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이 되버린
되어 버린
그리고 버린
다 버린
그 기억의 끄나플을 무세요
물고 놓으세요
마음은 길고 길답니다.
인생보다 길어요
인생보다 번잡해요
내 마음속은 인생보다 번잡해요
왜 그리 걱정이 많아요
뭐가 그리 문제에요
너는 길을 잘못 들었어요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다 포기해야 하나요
벼랑의 끝은 바닥이에요
바닥은 또다른 생명체들을 위한 땅이에요
시~땅이에요
거기서 새로운 시작이에요
시작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어요
아니 못했어요
시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죠
시인은 원시인이나 할 수 있는 것이죠
요즘같은 범인들은 못해요
그 범인들이 다 범인들이죠
장본인들이에요
이렇게 만들어버린 장본인이에요
무능력자에요
무를 쓸 능력도 없는 자에요
무를 잴 능력도 없는 자에요
자 이거에요
내가 가진 전부에요
다 죽은 무를 줬어요
가지세요
아무 것도 없는 무를.

Posted by 소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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