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과제들과 해야 할 일들 속에 장기적인 계획을 지켜나가기란 쉽지 않다. 대학생활에서, 특히 이공계 대학생이라면 쏟아지는 과제들 속에 허덕이다 하루가 홀딱 지나가버리기 일쑤이다. 장기적으로 세워놓은 계획은 어쩌다 한번씩 실행될 뿐이고, 결국 뒤에 가면 남는 것이 없게 된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평소에는 과제 제출일이 다가와서 불안하고, 시험기간에는 시험 때문에 불안해서 지금 당장은 필요가 없는 일들은 하지 않게 된다.
그 불안감을 무시할 수 있는가가 장기적 계획 달성의 시금석이다. 그리고 장기적 계획 달성 혹은 진행이 지나보니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장기적' 불안감을 해소해주기 때문에 단기적 계획 달성에도 도움을 준다.
단기적으로는 절대 달성될 수 없고, 오랜 시간 꾸준히 해야만 되는 한 두 가지의 일과를 만들자. 취미 생활도 좋고 학업이나 일과 관련된 것이라도 좋다.
악기 연주, 글쓰기, 비전공 관심 분야 독서, 운동, 외국어 공부 등 어떤 것이라도 좋다.
하루 한시간이나 두시간 정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은 한다. 숙제가 쌓여있어도, 시험이 코앞이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처음엔 불안감을 이기기 힘들겠지만, 사실 그 시간을 할 일에 투자한다 하더라도 그 효율을 따지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매일 하던 일과가 투입됨으로써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하루가 돌아간다. 그리고 항상 그 일과를 감안하기 때문에 바쁠 때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만약 하던 일과를 바쁘니 안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갑자기 마음에 여유가 생기게 되고, 집중력은 오히려 떨어진다.
신변에 큰 변화가 생기거나, 심리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일과를 멈추지 않는다. 매일 하는 일과는 결코 전체 일에 방해되지 않는다. 이건 개인적인 경험이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장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 일들을 고르면 좋다. 만약 그것이 자리를 잡는다면 장기적인 안정감이 생기고, 다른 업무도 능률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자리 잡기 전까지의 불안감을 어떻게 '무시'하느냐가 관건이다.
뭉게 구름을 올려다 볼 때마다 느껴지는 유토피아의 우울함
과거의 어느 지점, 그 때도 하늘을 올려다봤을까. 그 때의 기억으로 나는 회귀하고, 구름의 움직임은 형이상학적인 상상력을 자극하고 나는 지상에 존재하는 무엇이 아닌, 구름의 움직임을 관망하는 절대자의 위치가 된다.
구름의 평화로운 움직임. 평화로운 우울. 일순간에 현실을 벗어나는 행복과 그 행복이 높이 떠 있다는 우울함에 눈물이 고인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느껴지는 아늑한 우울함. 나는 비를 맞지 않고 있다는 그 아늑함에 쉴새없이 나뭇잎과 땅을 때리는 빗소리는 자꾸만 감정에 젖게한다. 감정은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토요일의 기분을 느낀다. 토요일. 모두가 어딘가로 떠났을 때 홀로 남았던 토요일. 그래서 차라리 비가 오는 것이 아늑했던 기억. 편안하지만 우울한 그 오묘한 감정은 비가 창문을 때릴 때 더 강해진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흔들리는 차창소리를 들을 때의 느낌.
과거의 어느 지점, 그 때도 하늘을 올려다봤을까. 그 때의 기억으로 나는 회귀하고, 구름의 움직임은 형이상학적인 상상력을 자극하고 나는 지상에 존재하는 무엇이 아닌, 구름의 움직임을 관망하는 절대자의 위치가 된다.
구름의 평화로운 움직임. 평화로운 우울. 일순간에 현실을 벗어나는 행복과 그 행복이 높이 떠 있다는 우울함에 눈물이 고인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느껴지는 아늑한 우울함. 나는 비를 맞지 않고 있다는 그 아늑함에 쉴새없이 나뭇잎과 땅을 때리는 빗소리는 자꾸만 감정에 젖게한다. 감정은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토요일의 기분을 느낀다. 토요일. 모두가 어딘가로 떠났을 때 홀로 남았던 토요일. 그래서 차라리 비가 오는 것이 아늑했던 기억. 편안하지만 우울한 그 오묘한 감정은 비가 창문을 때릴 때 더 강해진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흔들리는 차창소리를 들을 때의 느낌.
대학에 가면 어딜가든 '글로벌 리더'라는 말이 써 있는 플래카드나 포스터를 볼 수 있다. 그 놈의 글로벌 리더가 뭔지 아무튼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써 볼 때마다 내 자신이 쪼그라드는 것을 느낀다.
물론 어느 조직에 가든 자신이 누군가의 부하이자 동시에 리더가 되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리더에의 강요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훈련을 받거나 경험이 늘면 아무리 리더십이 부족한 사람도 어느정도 리더십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원래 리더십 능력이 뛰어나던 사람을 능가해서 전두지휘할 수는 없다. 왜냐면 원래 능력이 뛰어나던 사람들도 훈련을 받고 경험을 할테니까.
어디를 보더라도 좋은 리더가 되라는 말만 있고, 좋은 리더를 고르는 방법, 부하로서 각 리더에 맞게 대처하는 법, 혹은 리더를 잘 내조하는 방법 등에 관한 것은 전무하다. 절대 다수가 리더가 아닌 마당에 굳이 좋은 팔로우어가 되는 법을 가르쳐줄 필요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좋은 참모가 되고 싶지만, 대학에서는 제갈량이 되라고 하지도, 장비가 되라는 말도 하지 않고, 오로지 유비나 조조가 되라는 말만 하고 있다. 대학의 글로벌리더 옹알이는 유행따라 열심히 팔로잉해가는 팔로우어의 모습에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역설적이다.
물론 어느 조직에 가든 자신이 누군가의 부하이자 동시에 리더가 되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리더에의 강요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훈련을 받거나 경험이 늘면 아무리 리더십이 부족한 사람도 어느정도 리더십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원래 리더십 능력이 뛰어나던 사람을 능가해서 전두지휘할 수는 없다. 왜냐면 원래 능력이 뛰어나던 사람들도 훈련을 받고 경험을 할테니까.
어디를 보더라도 좋은 리더가 되라는 말만 있고, 좋은 리더를 고르는 방법, 부하로서 각 리더에 맞게 대처하는 법, 혹은 리더를 잘 내조하는 방법 등에 관한 것은 전무하다. 절대 다수가 리더가 아닌 마당에 굳이 좋은 팔로우어가 되는 법을 가르쳐줄 필요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좋은 참모가 되고 싶지만, 대학에서는 제갈량이 되라고 하지도, 장비가 되라는 말도 하지 않고, 오로지 유비나 조조가 되라는 말만 하고 있다. 대학의 글로벌리더 옹알이는 유행따라 열심히 팔로잉해가는 팔로우어의 모습에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역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