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윤학

카테고리 없음 2013. 3. 29. 17:50

손 - 이윤학




종합병원 로비에 켜진  TV

푸른빛이 끊임없이 바닷물을 열람하고 있다.


플라스틱 컬러 의자의 열에 

맞춰 앉은 사람들

조금씩 입을 벌려

바닷물을 들이켜고 있다.


손바닥으로 찢어지는 입을 틀어막고 있다.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고 있다.


TV 화면을 등진 한 사람

가랑이를 쭉 벌리고

머리통을 처박고 있다.


터지는 머리통, 

머리털을 움켜쥐고 있다.


고통은 바윗덩어리 속에 있다.

단번에 깨부술 수 없다, 그는

얼마 안 된 보호자이다.


우악스런 손가락들

바위 속으로 뿌리를 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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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음에 드는 잎만 따온 것 같아 걱정이 된다. 혹시나 아프지는 않을까.  




"찻 잎이나 차 열매가 물기 하나 없이 건조된 후에야 뜨거운 물과 조우할 수 있듯이, 사람도 그와 같다. 충분히 건조되었을 때에야 온몸으로 응축하고 있던 향기를 더 향기롭게 퍼뜨리는 뜨거운 차 한 잔처럼,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마주한 시간도 그와 같다. 향기롭게 발산하기 위하여 나에겐 언제나 따뜻한 물과 같은 당신이 필요하다."

-김소연, <마음사전>, 마음산책, 26페이지 




"이 세상 애인들은 서로에게 소중하지만 아직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함이 사라지고 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다. 이 세상 부부들은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미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디론가 숨어들고 있다. 중요한 사람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는 의욕이 있는 한, 버려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각자의 믿음만이 고개를 내민다." 


-같은 책, 57~58페이지 




"가장 진실된 눈물은 혼자 있을 때에 흘리게 된다." 


-같은 책, 86페이지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꼭 잃을 것만 같아서 다가갔고, 다가갔다가는 꼭 상처를 입을 것만 같아서 기다렸다." 


-같은 책, 110페이지




"'홀림'이 근거를 찾아 나선 상태. '반한다'는 것이 근거를 아직 찾지 못해 불안정한 것이라면, '매혹'은 근거들의 수집이 충분히 진행된 상태다. 풍부하게 제시되는 근거 때문에 매혹된 자는 뿌듯하고 안정적이다."


-같은 책, 123페이지




"누군가의 뒷모습은, 돌아선 이후를 오래도록 지켜보았을 때에만 각인되기 때문에, 어쩔 도리 없이 아련하다."


-같은 책, 136페이지 



"위로란 언제나 자기한테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형태대로 나오는 것이다."


-같은 책, 152페이지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같은 책, 182페이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위선은 나의 식은 사랑과 당신의 식지 않은 사랑의 간격을 메우기 위하여 필요하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위악은 나의 식지 않은 사랑과 당신의 식은 사랑을 견뎌내기 위하여 필요하다."


-같은 책, 206페이지




"결정 :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것."


-같은 책, 305페이지




"소심 : 경우의 수를 너무 많이 헤아리는, 초식동물의 쫑긋거리는 귀." 


-같은 책, 308페이지



Posted by 소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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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를 바라보았다지만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었네 


-김소연, '그날이 그날 같았네' 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민음사 


나를 보고는 있지만 그 속에는 내가 없던 적이 있었다. 거기에 나만 외로이 반사되어 내 눈에 다시 비쳤다. 너를 바라고 바랐던 마음은 네 눈에 다다르지 못한 적이 있었다. 



당신의 저쪽 손과 나의 이손이


내 다섯 손가락으로 당신 손등을 꽉 감싸고 

당신의 손바닥을 내 손바닥에 빈틈없이 맞붙이고

당신의 그림자와 내 그림자와 

봉합된 이 모양을 눈 떼지 않고 바라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이 구겨진 길을 따라 걷는다


한 쌍의 다정한 말똥구리처럼

지구를 굴리며 걷는다 태양을 향하여 직진으로 걷는다

당신의 저쪽 손과 나의 이 손이

지문 하나 남지 않게 닳고 닳도록 

그러므로 말똥 같은 지구를 

우주 벼랑 끝으로 굴려 떨어뜨리도록


당신의 그림자와 내 그림자가 봉합된 채

이 조그만 지구에 그늘과 밤을 수천 번 드리울 때

우리 뒤에 깔린 반듯한 비단길을 아무도 걷지 말거라

벼랑 끝 노을이 우리 이마에 새겨주는 불립문자를

아무도 읽지 말거라 


-김소연,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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