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해야 할 일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방학처럼 여유가 있을 때는 하고 싶은 일을 주로 정리하고, 학기 중 바쁠 때는 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한다.
나도 항상 해야 할 일이 뭔지 생각하고, 어떻게 시간을 쪼개야 할 지를 결정한다.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시간이 여유 있을 때는 그런 계획이 보통 무용지물로 전락하지만, 시간을 타이트하게 운영하지 않으면 목표에 차질이 생길 때는 최소한 해야 할 일 들을 정리하는 것만큼은 해야 한다.
방학 때 노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해야 할 일을 정리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졸업논문을 써야 하기에 게임이론과 복잡계를 공부하여 주제의 틀을 잡아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부적으로 어떤 책을 읽고 무엇을 정리할지를 계획을 세워놔야 한다.

그러나 항상 이런 계획들을 세우던 나는 한 번도 마음이 여유로웠던 적이 없다. 언제나 무언가에 마음은 쫓기고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제 계획대로 해본 적도 없다. 시간은 많이 남는데, 그 많은 시간을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만 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을 보낸 때가 많다. 즉, 맘편하게 놀지도 못하고 공부도 안 하는 허송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내 앞에는 해야 할 일밖에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은 잊혀지고 만다. 원래는 하고 싶었던 일이 단순히 '해야 할 일'로 전락한 것도 많다. 그리고 언제나 할 일만 남다보니 내 생활은 과제가 없을 때도 과제를 스스로 만들어 그 과제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 버리는, 즉,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며 만족감을 느끼는 그 이상의 것은 바랄 수 없는 처지에 이른다.

이러한 실수 혹은 실패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 이런 방법을 생각해본다. 해야 할 일 대신 하는 일, 즉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리하는 것이다. 오늘 했던 일을 정리해 보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하는 일을 정리함으로써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실제로 느끼는 것이다. 굳이 해야 할 일을 정리할 필욘 없다. 하는 일을 정리하다보면 그 즉시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하는 일을 정리하는 것의 장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해야 할 일'을 계속 생각해야 하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만을 파악하고 있을 뿐.

2. 내가 얼마나 허송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해야 할 일'만을 생각하다가 그 중압감에 시작도 안 하고 그냥 딴 짓만 하다가 신간을 보냈지만 정작 그 일을 생각은 많이 했기에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하는 일'을 정리하면 그런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

3. 자신이 이루어 낸 일에 대해 성취감을 가질 수 있다.
원래 과제란 것은 끝이 없다. 학기 중에도 마찬가지고 방학 때도 '해야 할 일'만 생각한다면 마찬가지다. 과제를 하다보면 이미 한 것에 대한 성취감은 아주 잠시고, 그 즉시 이제 다른 걸 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옮겨 간다. 과제를 한다는 것은 부담을 하나씩 덜어내는 것이지 성취감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오늘 한 일 혹은 이번주에 한 일을 정리한다면, 자신이 한 것, 혹은 만들어 낸 것들에 더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고, 거기에서 성취감을 재연할 수 있다.


하는 일을 정리하는 것도 잘못하다가도 결국 해야 할 일을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오늘은 놀기만 했네, 내일은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는 일을 정리할 때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와 가까운 과거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는 일을 정리하든 해야 할 일을 정리하든 무엇인가를 실제로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마치 그것을 과제처럼 접근하기보다는 지금 하는 일만 생각하고, '해야 할 무엇인가를 한다'는 생각이 아닌, '나는 이것을 한다'는 것만 생각한다면 심적 부담이 덜리고 '실제로 무엇인가를 할' 개연성이 높아질 것이다.

과거에 한 것들과 앞으로 해야 하는 일 대신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집중하며 거기에 대한 어떠한 평가와 자책도 최소화한다면 아이러니하게 과거와 미래가 더 만족스러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Posted by 소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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