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변기
마음에 양변기 하나 두고 싶다
마음에 누가 가래침 내뱉으면 물 내리고
마음에 누가 오줌 누면 물 내리고
마음에 누가 똥 누면 물 내리고
언제나 맑은 샘물 가득 채워두고 싶다
내 마음 똥통 오줌통이어서
마음에 깊은 욕창 아물지 못하고
피고름 고이고 구더기 들끓는 날
마음에 양변기 놓아 물줄 당겨
쏴아아 쏴쏴 다 씻어 내려버리고 싶다
오욕에 오염된 오장육부 다 내려버리고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는 마음 다 내려버리고
양변기 하나 놓아두고 살고 싶다
쌀
서울은 나에게 쌀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웃는다
또 살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나에게는 쌀이 살이고 살이 쌀인데 서울은 웃는다
쌀이 열리는 쌀나무가 있는 줄만 알고 자란 그 서울이
농사짓는 일을 하늘의 일로 알고 살아온 우리의 농사가
쌀 한 톨 제 살점 같이 귀중히 여겨 온 줄 알지 못하고
제 몸의 살이 그 쌀로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래서 쌀과 살이 동음동의어이라는 비밀 까마득히 모른 채
서울은 웃는다
학교 도서관 시 코너에서 아무 책이나 뽑았다. 가끔은 이렇게 무작위에 맡긴다. 의식적으로 행동해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걸 가끔 얻으니까. 그렇게 뽑은 게 이 책인데, 사실 그런 무작위적 행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적다. 시집은 전반적으로 상투적이었다. 그리 건질 것은 없었지만 위 두 시는 그래도 기록해 둔다. 떠오른 생각을 풀어썼을 뿐이지만 그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