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생이 나를 피해 가는 시절 

네 손을 잡으려는데 손이 없다면? 네 몸을 안으려는데 몸이 없다면? 네 밑을 내게 주는데 밑이 없다면? 언젠가 그런 생각이 들어, 늙어 가는 몸을 찬찬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입가는 내려앉고 손거죽 쭈그러들고 여윈 팔 몹시 후들거리고, 그리하여 이제 내가 욕망하는 사람의 욕망이 될 수 없다는 것, 이제는 내가 욕망하는 누구도 나를 제 욕망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리라는 것, 마주 오던 나를 보고 골목으로 피해 가던 중학교 때 친구처럼, 지금은 묵묵히 생이 나를 피해 가는 시절.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열림원  




나이듦의 슬픔. 더 이상 내가 욕망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슬픔과 서러움. 말하지 않을 뿐이지 그들은 모두 느끼고 있다. 자신의 피부는 쪼그라들어도 욕망은 쪼그라들지 않기에 그것을 찌그러뜨려야 한다. 서로를 위로 할수밖에 그 위로 또한 욕망을 충족시켜주진 못하지만. 
Posted by 소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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