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야, 넌 참 좋겠다


선풍기 바람을 머리에 쐬니 정신이 하나 없고 이러다 감기 걸릴 것 같다. 선풍기 목을 꺾어 다리 아래로 쐬니 시원하기 그만이고 머리도 안 아프다. 다리는 머리가 없으니 바람을 쐬어도 불평이 없고, 오히려 좋다고 한다. 다리에 바람 불면 머리는 즐겁고, 머리의 즐거움은 곧장 다리로 가니, 머리의 즐거움이 다리의 즐거움이다. 머리에 선풍기 바람을 쐬게 해서는 안 된다. 머리는 감기도 잘 걸리고 생각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도 감기도 머리가 대신하니 다리야, 넌 참 좋겠다.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열림원 



마음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 있다. 몸이 편해도 마음은 머리는 불편할 수 있다. 보고 듣고 맡고 맛보는 예민한 감각들이 모두 모여 있는 머리는 언제나 고달프다. 자기 자신에게서 오는 것까지 모자라 몸통에서 오는 고통도 머리의 몫이다. 그게 우리 머리고 우리는 누구나 머리 속에 있다. 
Posted by 소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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