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본 론" - 최영미

2011. 9. 16. 21:37


자 본 론


맑시즘이 있기 전에 맑스가 있었고
맑스가 있기 전에 한 인간이 있었다
맨체스터의 방직공장에서 토요일 저녁 쏟아져나오는
피기도 전에 시드는 꽃들을, 집요하게, 연민하던,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비




큰 그림을 그리고 원리를 세우고 이론을 만들고 각론을 다듬는 일에는 숨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이성이 필요하다. 모순을 피하고 논리에 빈틈이 없도록 하는 작업은 고독한 작업이다. 그 고독을 잘 버티고 버텨서 만든 이론은 오래오래 인용되고 기억되며 고전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런 이론을 만들기 위한 동기는 이성과는 무관하다. 우연이 작용하고, 감정이 작용하고, 개인들의 경험이 작용한다. 이론은 보편적이지만 그 이론을 만들게 한 동기는 개인적이다. 시인은 마르크스에게서도 그의 이론을 만들게 한 동기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가상적으로 그 순간을 포착하여 시로 인화한다. 
Posted by 소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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