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다공원
언제부턴가
파고다공원은 그들의 곳이다
날마다
여기 와서
앉았다가
어슬렁거리다가
저녁 무렵 눈빛 없이 어디론가 간다
파고다공원은
그들의 숨이 붙어 있는 곳이다
찾아갈 딸네 집도 없었다
무료급식 점심때면
아이들처럼
줄을 서서
아이들처럼
서로 먼저 먹으려고 싸움질을 한다
그들에겐 부끄러움이 없다
그들에겐 가책이 없다
또한 그들에겐
수많은 사연이 많을수록 오늘이 초라했다
누가 이 삶의 말기를 대신 써주겠는가
언제부턴가
파고다공원은 그들의 곳이다
그들의 입에서 대통령도 오르내린다
민주당과
한나라당도 오르내린다
김종필도 오르내린다
참고 있던
아들의 학대도 입에 오르내린다 운다
손병희 동상
한용운 동상 아래
거기가 그들의 곳이다
민주노총 시위행렬이 지나가는 날
그 행렬과 아무런 상관 없이 그들이 있다
내일 모레면
속임수가 많던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또 내일 모레면
마누라 자주 팬다는 노인이 오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러기 전까지 파고다공원은 누누이 찌꺼기 성욕이 남은 그들의 이승이다
한국 노인들의 이승이다
-고은, <두고 온 시>, 창작과비평사
마치 그곳을 보는 듯한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풍경이 발산하는 분위기, 거기 속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집단적 무드를 캐치해 내 각색해 내는 풍경화가 주시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풍경화다. 그 한편의 풍경화를 시로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