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던지기 - 고은

2011. 3. 26. 00:29
공던지기

방학중의 딸과 함께 공던지기를 했다
서투른 것이 사랑이었다
좀 세게 던져주면
잘 튀는 공이
딸의 키를 넘어갔다
딸의 공이 와서 튀면
내 키도 넘어 저만치 떨어졌다
깔깔깔 딸의 웃음이
단풍나무 잎새들을 떨어뜨렸다 늦가을이었다

나도 세게 던진 뒤 땀을 훑어내면서
하늘을 보았다

비행운 하나도 없다
하늘에는 어떤 왕조도 없다
텅 빈 저승
거기에 공을 잘못 던졌다 딸이 깔깔 웃었다

-고은, <두고 온 시>, 창작과비평사

딸과 함께 공을 주고 받는 시인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저승에 던진 공에 잘못 던져서 딸이 웃는다. 평화롭다
늦가을 붙잡을 것도 없고 쫓길 것도 없는 날.
웃음소리가 청명한 하늘이다


Posted by 소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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