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비애

소나무는 굵은 몸통으로
오래 살면 살수록 빛나는 목재가 되고
오이나 호박은 새콤달콤
제 몸이 완성될 때까지만 살며
백합은 제 입김과 제 눈매가
누군가의 어둠을 밀어낼 때까지만 산다는 것
그것을 알고부터 나는
하필 사람으로 태어나
생각이 몸을 지배할 때까지만 살지 못하고
몸이 생각을 버릴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단명한 친구는
아침이슬이라도 되는데
나는 참! 스물 서른이 마냥 그리운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슬펐다

-박라연, <설운 서른>, 버티고



나도 언젠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결코 오고 싶지 않은 그 날. 스물 서른이 마냥 그리운 그 날. 지금을 그리워 할 것이다. 소나무도 오이도 백합도 되지 못하고 그리움도 지칠 때 쯤 우리는 떠난다.
Posted by 소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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