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카드, 박근혜 카드

소리끝 2010. 7. 6. 18:50
MB정부가 정운찬 카드를 꺼냈을 때 그야말로 기막힌 패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MB 정부의 판 짜는 능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나도 생각했다. 정운찬이 갑자기 극보수 정부의 총리를 자처할지 아무도 예상 못했기에, MB 정부의 인재관리 능력이 놀라웠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하다. 정운찬을 데려오는 선택은 탁월했지만 그의 가치를 엉뚱한 곳에 낭비해버렸다. 세종시와 함께 시작해서 세종시와 함께 운명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정운찬으로서도 억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아니 경제학자 출신 총리가 세종시 총대나 매고 총알받이 하다 전사하다니, 이 무슨 헛웃음이 나오는 시츄에이션인가. 세종시 뿐만이 아니다. 총리다운 역할은 하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뒤치닥거리에만 그는 소비되었다. 완전히 판을 가져올 수 있는 찬스를 이렇게 날려버리는 MB 정부도 대단하다. 야구에서 무사만루 찬스는 점수를 안 내기가 더 힘들다고 하지 않는가. 정말 대단하다.

박근혜 카드는 어떨까. 박근혜가 언젠간 치고 올라오긴 올라와야 했는데, 박근혜는 그 시점을 세종시 논란에서 들고 나왔던 것 같다. 처음 박근혜가 치고 나왔을 때 나는 실수라고 생각했다. 아.. 이건 잘못 건드렸구나. 근데 예상 외의 야당의 지방선거 선전으로 분위기가 역전되었고, 박근혜의 공간을 급 넓어졌다. 이걸 다 예상하고 했다면 정말 정치 천재고, 그렇지 않다면 기가막히게 운이 좋은 것이다. 박근혜로서는 사실 그 때가 치고 나가지 않으면 존재감이 사그러질 시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밀어붙였는데 운이 따라줬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만약 그가 총리를 한다면.
어찌됐는 친이계는 위험부담을 안고 가는 것인데, 글쎄 자충수가 될 수 있지만 MB정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인 것 같다. 이 상황에서 허수아비 총리를 세울 수는 없고, 그렇다고 김태호처럼 비호감 인물을 올릴 수도 없을 터. 그가 총리가 되면 그야말로 재밌는 정치 싸움이 될 것인데, 소수파가 다수파 안에서 어떻게 공간을 만들고 결정적인 타이밍을 잡아 치고 올라오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박근혜파는 늙은 이미지, 이명박파는 젊은 이미지, 인재관리 측면에서 이명박파를 박근혜파가 따라올 순 없을 듯 싶다. 결국 박근혜 1인의 손에 계파의 운명이 좌우될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