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오규원, '그리고 우리는'
소리끝
2012. 7. 19. 02:00
그리고 우리는
-순례 10
살아 있는 주검의 비밀은 주검만이 안다.
우리가 주검이 두려운 건
우리가 주검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주검의 입을 막고
귀를 막고 코를 막는다.
그 다음 일어나지 못하도록
관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 지하에 묻은 뒤
흙으로 봉분을 쌓아올린다.
주검은 팔다리가 묶여 일어설 수 없고
입에 흙이 가득 차
맛있는 제삿밥도 먹을 길이 없다.
웃지 마라. 비로소 우리는
주검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안심하고 제사상에 다가가
배불리 먹고 마시며 낄낄거린다.
그러나
주검은 한잔할 길이 없다.
-오규원, <오규원 시전집 1>, 문학과지성사
그래서 우리는 죽은 자를 땅에 묻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