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 '겨울 洞口'

소리끝 2012. 7. 19. 01:47

겨울 洞口


잎 가지지 못한 삶이 서 있고

사람 없는 집들이 즐비한 길 위로

밭이 있고 포도나무가 있다

포도나무는 밭을 포도밭으로 만들고 있지만

길들이 모두 집에 와 닿는 저녁이 와도

빈집들은 이 마을을

빈 마을 이외로는 만들지 못한다

잎 가진 삶이 다 유배당한 

겨울 洞口


-장석남,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문학과지성사



빈 마을 어귀에 다다랐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고, 포도나무만 덩그러니 있다. 포도밭이 있는 것은 그래도 손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인데, 마을 어디에도 사람들은 없다. 삶에선 잎들이 떨어져 나가고 가을이다. 아니 낙엽처럼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새순이 죽어버렸을 수도 있다. 공허함. 앙상함. 빈 마을은 내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