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장석남, '저녁의 우울'
소리끝
2012. 7. 19. 01:43
저녁의 우울
여의도 분식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강변을 걸었다
강은 내게 오래 된 저녁과 속이 터진 어둠을 보여주며
세상을 내려갔다
청둥오리도 몇 마리 산문처럼 물 위에 떴다
날곤 날곤 했다 그러면 강은 끼루루룩 울었다
내가 너덧 개의 발걸음으로 강을 걷는 것은
보고 싶은 자가 내가 닿을 수 없는 멀리에 있는
사사로운 까닭이지만, 새가 나는데 강이 우는 것은
울며 갑작스레 내 발치에서 철썩이는 것은 이 저녁을
어찌하겠다는 뜻일까.
-장석남,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문학과지성사
풍경들에 마음을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물론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은 풍경과는 상관 없는 일로 지쳐있거나, 틀어져있거나, 애잔하게 가라앉아 있었겠지만 풍경은 거기에 물결을 일으킨다. 가라앉아 있던, 꾹 참던 감정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도대체 지금 이 순간을 어찌해야 되는지 풍경에게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바람소리 뿐이다. 그래도 그것이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