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최영미, '어머니의 시'
소리끝
2012. 6. 8. 19:15
어머니의 시
시계바늘처럼 정확한
어머니의 칼도마 소리에잠깬 아침 여섯시
게으른 이불 속 뭉기적, 시와 놀았다
어제는 오늘을 얹고
오늘에 내일을
또 내일에 내일을......
그렇게 켜켜이 김장배추 속 채우듯 알뜰하게 세월을 싸서
누구에게 갖다 바치려는 걸까, 어머니는
아아, 어머니는 당신 평생을 저리
썰다가만 가시려는구나
쓱쓱 싹둑 저미고 다져
시간을 엮지 못하고
피곤을 꿰매지 못하고
눈물과 한숨을 그냥 촘촘
썰다 고이 가시려는구나
시계바늘보다 촘촘한
칼도마 소리에 찔린 아침
나는 시 하나를 엮었다
부끄러운 한올을.
-최영미, <꿈의 페달을 밟고>, 창작과비평사
"어머니는 당신 평생을 저리 썰다가만 가시려는구나"
어머니, 싹둑 썰어서 자식들에게만 나눠주셨던 어머니.
이제 당신의 시간을 엮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