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메모.
단편을 좋아한다. 장편보단 단편을 좋아한다. 원체 소설을 잘 안 읽지만 유명한 사람의 단편집은 곧잘 읽는 편이다. 근데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을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좋은 소설가의 단편집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서 항상 찾아야 했지만 그러면서도 왜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상을 받았으니 작품성은 의심할 여지 없고, 여러 사람의 단편을 한꺼번에 볼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이상문학상이 단편(혹은 중편)만을 심사한다는 것을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앞으로는 가끔 단편이 읽고 싶을 때 아껴 놓은 아이템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읽으면서 밑줄 치고 싶은 문구를 메모해 둔다. 수록된 모든 작품을 다 읽진 않았고,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 김종관ㅇ의 '서열 정하기 국민투표', 윤성희의 '어쩌면', 박민규의 '낮잠'을 읽었다.
사랑과 믿음, 상당히 어려운 조합이다. 그나마 소망은 뺀다 쳐도, 사랑과 믿음 중 하나만도 제대로 감당하기 힘든 터에 감히 둘을 술목 관계로 엮어 사랑을 믿은 적이 있다니. 믿음을 사랑한 적이 있다는 말 만큼이나 뭐가 뭔지 모르게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권영선, '사랑을 믿다.' 12 페이지
심근경색입니다. 병원을 나와 혼자 걷던 그 길이 지금도 생각난다. 앰뷸런스가 한 대 지나갔고, 지자제 선거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 있고, 오토바이를 세운 퀵이 휴대폰으로 위치를 묻고 있었고, 그럼 천 원 더 주셔야 합니다, 했고 일 열심히 하게습니다, 선거운동원들이 구십 도로 인사를 하고, 만삭의 젊은 처자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고, 그 옆엔 우체통이 있고, 다릴 저는 어떤 남자가 한 묶음의 신문을 내려놓았고, 가로수는 푸르렀고, 기사식당에서 나온 운짱들이 커피를 든 채 이쑤시개를 물고 있었고, 구구 비둘기들이 인도 위를 걷고 있었고, 나는 심근경색이었다.
-박민규, '낮잠', 255~256페이지
지난 세월을 돌이키는 일은 어둠 속에서 무성영화를 보는 일과 매우도 닮아 있었다.
-박민규, '낮잠', 260페이지
하긴 선망의 대상이던 그녀가 나같이 평범한 남학생을 기억할 리 없다. 말하자면 나는, 헵번의 영화에 출연한 추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엑스트라일 뿐이다. 불만은 없다. 별이 인간을 헤아릴 순 없으니까. 오로지 인간이, 별을 헤아릴 뿐이니까.
-박민규, '낮잠', 265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