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성에 대한 가치의 변화 (<마음의 진화> 메모)
남성은 자신이 여성의 첫 상대이기를 원한다는 말이 있다. 즉 처녀성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말이다. 남자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진화적인 이유는 그래야 다른 남자의 자식을 키우는 오쟁이를 질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화심리학에서의 조사에 따르면 환경에 따라 부여하는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본능이라는 것이 어느정도 발현될지 그 정도는 환경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남성들이 처녀성에 부여하는 가치는 피임에 대한 통제력의 증가와 상응해서 지난 반세기에 걸쳐서 감소해 왔다(Buss et al., 2001). 1930년대 남성들은 배우자의 순결을 거의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보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이 가치는 바람직하지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 수준으로 평가 절하됐다.
-<마음의 기원>, 데이비드 버스, 나노미디어, 225페이지
물론 처녀성에 대한 선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하락한 것이다. 이는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이것은 처녀성을 원하지만 (즉 속마음에서의 가치는 그대로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치를 애써 낮춘 것일까, 아니면 진짜로 환경에 맞게 속마음까지 처녀성에 대한 가치를 낮춘 것일까. '속마음'이라는 애매한 용어를 썼지만 우리가 짝짓기 상대를 고를 때 단지 자신의 본능에만 매달리지 않고 뇌가 적절히 보정을 해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조건들을 일치시키고 처녀다 아니다 라는 조건만 있다면 처녀를 선택할 것이다. 성관계 상대를 고를 때 여러 조건들을 따질텐데 처녀성을 우선가치로 두면 짝을 고르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치가 낮아졌다.
정말 본능, 그러니까 1차적 선호에만 충실하다면 우리는 TV 속 연예인들과 사귀려다가 결국 아무하고도 연애를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뇌에서는 자신이 갖춘 조건, 그리고 주변 환경에 따라 짝짓기 상대의 기대치를 낮춘다. 수학적으로는 Nash 균형에 도달할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끼리끼리 만나게 될 것이다.
처녀성에 대한 가치의 하락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성적으로 개방적인 사회일수록 주변에 성관계를 가져보지 못한 여성을 찾기란 힘들고 결국 자신의 가치를 낮추어야 한다. 만약 그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언제든지 자신의 욕망이 발현될 것이다.
이슬람 사회와 같이 여성의 사회활동과 성적 결정권이 거의 없다시피한 사회에서는 처녀성에 대한 가치가 매우 높은 것을 보면 처녀성에 대한 선호를 사회환경에 맞게 조정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처녀성에 대한 선호가 재미있는 점은 다른 성적 욕망과 상충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가능하면 다양한 짝짓기 상대를 원한다고 할 때 이것은 처녀성에 대한 가치와 상충된다. 모두가 다양한 짝짓기 상대를 만날 수 있는 자유로운 연애 분위기라면 처녀성에 대한 가치는 포기해야 한다. 어쩌면 혼전 순결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는 철저한 1부 1처제, 혹은 일부는 루저로 남을 수밖에 없는 1부 다처제의 사회 대신 결혼 전에 다양한 섹스파트너를 가지며 처녀성에 대한 가치는 평가절하하는 문화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성에게 있어서 처녀성에 대한 선호는 성적인 억압일 뿐이다. 그것이 여자에게만 강조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처녀성에 대한 가치가 줄어든다는 것은 여성들이 성적으로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성적으로 자유로워졌다는 것은 결혼에 대한 압박(즉 성경험이 많은 신부에 대한 낮은 가치 부여)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경제적인 자유로 설명된다. 여성들이 반드시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되면서 자신의 신부로서의 가치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그럼으로써 혼전 성관계에 자유로워진다.
처녀성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는 부분적으로 여성의 경제적인 독립과 성욕 통제에서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일 수 있다. 스웨덴과 같은 몇몇 문화에서는 혼전 성관계가 거의 문제시되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결혼 즈음에는 대다수의 여성이 처녀가 아니다(Posner, 1992). 이런 상황은 다른 문화권에 비해 스웨덴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훨씬 덜 의존적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 있다. 리차드 포스너(Richard Posner)는 다른 문화권의 여성들과 비교해 볼 때 스웨덴 여성들에게 결혼은 거의 이득이 없다고 말한다(Posner, 1992). 스웨덴의 사회 복지 시스템은 탁아, 장기유급 출산휴가 그리고 다른 많은 물질적 혜택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전에 남편들이 제공하던 것을 국가가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세금 납부자들은 남성에 대한 경제적인 의존으로부터 여성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이러한 독립성은 여성이 결혼 전에 자유롭고 적극적인 성생활을 했을 때 치러야하는 희생을 완화시켜주거나 결혼 이외의 대책을 마련해 줄 수 있다. 대부분의 스웨덴 여성들이 혼전 성관계를 갖기 때문에 남성들이 순결성에 부여하는 가치는 3점 척도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0.25로 평정되었다.
-22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