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고통의 경계를 표시하려는 것처럼' 

소리끝 2012. 3. 28. 09:56



고통의 경계를 표시하려는 것처럼

셀 수 없는 지네 다리처럼 바지런한 고통이 있고, 탱크의 캐터필러처럼 뚜렷한 자국을 파는 고통이 있다. 고통 속에는 누군가 타고 앉아 핸들을 잡고 있다. 그가 힘껏 페달을 밟으며 너털웃음 터뜨리면, 웃음소리에 맞춰 새로 해 박은 당신의 어금니가 흔들리고, 멀쩡한 다리는 석유 시추공처럼 내려 박힌다, 예정된 속도와 정확한 각도로. 이윽고 고통이 멎으면, 당신은 또 한쪽 다리를 들고 뜨거운 오줌을 찔길 것이다. 그 와중에도 오직 당신의 것인, 고통의 경계를 표시하려는 것처럼.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열림원 


그래 맞다. 지네 다리같은 고통이 있고 뚜렷한 자국을 파는 고통이 있다. 누가 내 고통의 핸들을 잡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고통의 요동침에 멀미가 날 것 같다. 고통도 관성이 있다면 아무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