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삶과 죽음이 불편한 자여'

소리끝 2012. 3. 28. 09:50


삶과 죽음이 불편한 자여

이 세상에서 사람은 상록수 방식으로 사는가, 활엽수 방식으로 사는가. 학생들한테 물으면 열의 아홉은 활엽수 방식이라 한다. 그럴까. 가을 되면 다리털 빠지고, 머리카락 다 빠져 대머리 되고, 가을 되면 서울 사람들 다 죽어 가는가. 봄 오면 다리털 자라나고, 번쩍이는 대머리에 머리털 무성하고, 서울 사람들 강변 억새풀처럼 되살아나는가. 이 착각이 어디서 오는지 몰라도, 인도에서 불교가 발달한 것은 잎 지고 잎이 나는 북방에서라고 한다. 삶과 죽음이 불편한 자여, 동네 뒷산 소나무 밑에 가 보아라.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열림원


겨울이면 떨어져나가는 활엽수 같은 친구보다 때론 찌르기도 하지만 언제나 붙어 있는 침엽수 같은 친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