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메모] 한국인 코드 - 강준만

소리끝 2011. 8. 16. 22:49
[1] '코드'란 무엇인가? 철학자 이정우는 '코드'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 들어오게 된 것은 '구조주의'라는 사조가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고 지적하면서, "코드는 사물들을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규칙, 특히 무의식적 규칙"이지만, 오늘날의 코드 개념은 어떤 일반적인 무의식적 법칙의 의미보다는 숱한 집단들의 동일성(또는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사고 패턴들, 용어들, 정치적 입장들 등의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11p

[2] 마키아벨리는 위선의 미덕을 역설했다. 위선에 아무리 많은 문제가 있다 해도 위선은 위선이 표방하는 가치들을 옹호해 주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26~27p

[3] 나는 잘하는데 남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잘되면 내 탓, 안 되면 남의 탓"이라는 심리와 통한다. 이 버릇을 사회심리학에선 '자기본위적 편향'이라고 하며, 이게 집단에서 나타날 땐 '집단본위적 편향' 또는 '내집단중심주의(ethnocentrism)'라고 부른다. -31p

[4] 한국인들은 어떤 사회적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빨리빨리' 이뤄지는 변화를 통해 그 문제를 건너뛰거나 비교적 사소하게 만드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걸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말이다. 그래서 책임 규명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으며, 눈치 빠른 사람이 출세한다. 눈치는 한국인의 숙명이다. -56p

[5] 그런 극단적인 사례 중엔 자존감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자신이 이룬 걸 보잘것없이 평가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설이다. 자존감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자존감이 약해진다는 게 말이다.
자존감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는 자존감을 '자해적 자존감'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와 유사한 자존감으로 자신의 고립, 고독을 과장해 비장미에 빠져들고자 하는 자존감도 있다. 이 경우는 자해의 수준은 아닐망정, 외부의 적을 실제 이상으로 스스로 과대평가하는 동신에 협력할 수 있는 일마저도 적대관계로 만드는 '자기이행적 예언'을 통해 자신의 독선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강한 자존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90~91p

[6] 한국 사회의 갈등을 필요 이상으로 악화시키는 최대 요인 중의 하나가 '맥시멀리즘'과 '거대담론증'이다. 예컨대, 앞서 거론한 바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을 '종교탄압'이나 이념 문제로 몰고 가는 건,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믿어서라기보다는 일단 크게 치고 나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오랜 습속에서 비롯된다. 정부여당도 마찬가지다. 사학비리 문제를 실용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4대 개혁' 운운하면서 정권의 명운을 거는 과시적, 전투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필요 이상의 반발을 초래한 점이 있다. -101~102p

[7] 이규태는 '어디 가십니까'라고 묻는 한국의 인사말을 그런 유별난 점으로 보았다. 프라이버시를 소중히 하는 외국인에게는 분노를 유발할 이 말이 정을 나누는 인사말로 정착한 것은 조상들이 살아온 사회의 정착성이 별나게 강해 정이라는 접착제로 억세게 엉켜 있어 떠난다는 것에 원천적인 거부감을 갖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17p

[8] 6.25는 시민 사회에 대한 국가권력의 절대적 우위 문화, 달리 말해, '국민의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국민'을 만들어 냈다.
'국가의 국민'은 정치를 비롯한 공적 영역에 대해선 '소극적, 순응적 멘탈리티'로 무장하여 "불이익을 동반할 가능성이 있는 참여에 대해 극히 소극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공적 영역에 대한 그런 소극적인 태도가 곧 삶의 소극성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한 맺힌 세월에 대한 강한 보상심리의 작용으로 '공적 소극성, 사적 적극성' 현상이 나타났으며, 사적 적극성은 중앙과 정상을 향한 맹렬한 돌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문화는 한국인들의 삶이 전후에도 늘 전시 체제하의 긴장을 유지하게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146p

[9] 노엘레 노이만은 인간에겐 '제6의 감각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건 사회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감각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사회적 분위기의 모든 이동을 감지하는 안테나를 갖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인즉슨, "환경을 관찰하는 데 소모되는 노력은 확실히 누구로부터 배척받거나 혼자 남게 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168p

[10] 김영명은 극단주의 문화의 이유를 '단일사회'라는 데에서 찾았다. 그는 "인종, 종교, 언어, 문화, 역사의 구분 없는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한국과 북한 외에 거의 없다. 거기에다 땅은 좁고 인구는 많아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살 수밖에 없다. 이 두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는 나라는, 적어도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크기의 나라들 중에서는 없다. 작은 나라에 똑같은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살다 보니, 사람들은 조급하고 역동적이며, 사회는 집중되고 획일적이 된다. 또 사람들의 심성이나 사회구조가 극단적인 모습을 띠기 쉽다"고 말했다. -25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