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메모
소리끝
2011. 4. 9. 17:11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과 그 물질적 활용, 곧 기술의 의미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고 혼동되어 쓰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볼 수 없는 '과학기술'이라는 용어가 과학과 기술을 동일시하는 의미로 널리 쓰이지요. 이는 과학을 단순히 도구적으로 인식해서 풍부한 정신문화를 포기하게 될 뿐 아니라 물질주의에 빠질 위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극도의 실용주의가 만연해서 과학의 존재 이유가 실용성이라고 왜곡되어 있어 안타까운데, 이는 삶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기본 교양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학과 현대사회의 발전에는 과학적 사고, 곧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와 함께 자유로운 상상력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과 과학, 예술, 사회와 삶 등에 대한 폭넓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대학에서뿐 아니라 고등학교 과정에서부터 이른바 문과, 이과를 구분하는 교육제도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4p
이공계라고 불리지만 자연과학과 공학과는 배우는 내용과 사람들의 특징도 많이 다른다. 비이공계에서 봤을 때는 그게 그것일 것 같지만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에서 차이가 크다. 이 책에 설명되어 있는대로 자연과학은 인문학에 가깝다. 인류학과 경영학이 거기가 거기 아니냐는 말을 들으면 그 학과를 다니는 사람들은 발끈할 것이다. 과학이 과학기술로 붙여 불리면서 오해를 많이 받았다. 과학은 자연 그 자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과학이 어떤 것을 연구할 지는 그 응용 가능성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접근법은 변하지 않는다. 이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과학=기술=문명 으로 인식해선 안 된다. 기술의 사용에는 옳고 그름을 논쟁할 수 있지만 과학에는 그런 잣대를 적용할 수 없다. 원자폭탄이 E=mc^2 공식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면 과학기술이라는 그릇된 인식 때문이다.
물은 질서가 없는 것이고, 정돈되어 질서가 생긴 상태가 얼음인데 이를 두고 '대칭성이 깨졌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강의실에서 마구 돌아다니면 강의실의 어느 지점을 봐도 차이가 없지요. 그러나 줄을 맞춰 앉아 있으면 앉아 있는 자리와 자리 사이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 지점은 여러분이 앉아 있는 지점과 다릅니다. 그러니까 모든 지점이 똑같지는 않다는 겁니다 .이른바 자리옮김 대칭이 깨져 있는 거지요. 뿐만 아니라 모든 방향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발 ㅗ앞 사람이 앉아 있는 방향과 대각선 방향은 다르고, 따라서 방향도 대칭이 깨져 있지요. 그래서 얼음이 되면 대칭이 깨졌다고 말합니다. 대칭이 있으면 뭔가 질서 정연할 것 같고 대칭이 깨지면 질서가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대칭이 있으면 질서가 없는 경우이고, 대칭이 깨지면 정돈되어 질서가 생깁니다. 혼동해서 거꾸로 생각하기 쉽지요. -57p
대칭성이 깨짐을 수업시간에 직접적으로 배운 것은 없지만 물리를 전공하는 나도 오해하고 있었던 사실이다. 그런데 이 글 또한 또다른 오해를 낳을 수도 있는데, 물이 얼음이 되는 과정은 그 이전의 공간 분포에 특징이 없어 구분할 수 없다는 대칭성이 깨지긴 했지만 얼음이 된 상태에서 60도 각도 변환에 대칭이라는 또다른 대칭성을 얻었다. 즉,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대칭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대칭성을 얻는 것과 깨지는 것은 달라지게 된다. 이 책에서는 물리학에서 주로 말하는 대칭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